2011.12.30
경남 합천에 있는 해인사에 다녀왔다. 잘 알다시피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이 있는 우리나라 3대 법보사찰중 하나이며 성철 스님의 사리가 있는 곳이다.
아침 10시경에 출발, 휴계소에서 아침 점심을 다 먹으며 중부내륙을 타고 아이들과 함께 가다보니 휴계소마다 정차. 도착하니 3시가 다되었다. 원래는 근처 마이산까지 둘러보고 가고 싶었으나, 당일치기 여행이라 이건 접었다. 다음에 마이산을 갔다가 다시 해인사도 들려봐야겠다. 가는 길에 사진을 찍을수가 없었는데 성주ic를 나온후 해인사까지 이어지는 가야산 기슭의 39번 국도. 이 길 참 대단하더라. 여행을 좋아해서 강원도 내륙도 많이 다녀봤지만, 이런 길을 경남에서 만날줄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경사는 비록 강원도에 비해 약간 완만하나 코너의 회전은 강원도 어느 고갯길과 비교해도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물론 천천히만 가면 아무 문제 없다.
해인사는 가야산 국립공원 안에 있어서 주차장도 가야산 국립공원 안에 있다. 큰 길가주변에 작은 주차장이 있고 해인사 앞에도 작은 주차장이 있으나 왠만하면 큰 길 주변의 주차장을 이용하는게 좋다. 좀 걷자. 그 좋은 산에가서 창문닫고 차로 해인사 앞까지 가는건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여행 초보자다. 보행자 길도 왠만큼 완만하고 닦여있어서 유모차도 끌고 갈 수 있다. 해인사 앞 주차장은 정말 몸이 불편한 분들이나 이용해야되지 않을까 싶다.
청청한 겨울 가야산의 공기를 마시며 걸어가면서 해인사의 옛 사진들을 보았는데,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지금보다 작은 규모이고 정말 산속 깊은 곳 숲이라는 바다의 섬이었다. 지금 해인사의 앞쪽은 현대에 들어 새로 건설한 것이고, 규모는 꽤 큰 편이다. 해인사는 크게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맨 앞쪽 낮은 단은 현대에 들어 새로 지은 건물들이며, 수행하는 스님들의 방도 무척 많았다. 그 곳들은 문풍지가 있는 곳은 모조리 비닐로 덮어놓아서 쉽게 구분을 할 수 있었는데 가장자리로 잘 안보이는 건물은 모두 그런 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 외는 기념품을 파는 곳이나 법종 법고를 매단 건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간 단은 옛 절의 모습이 보이고 대웅전을 비롯하여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절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해인사가 창건될 당시부터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이다.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될 만큼 오래되었고 이 곳이 절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비록 국보나 보물은 아니지만 단정한 아름다움을 수백년간 간직하며 이 곳의 역사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제일 윗단이 우리가 알고 있는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판전이다.
언제나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 팔만대장경은 저 건물안에 검은 목판으로 빼곡히 쌓여있었다. 문살사이로 보이는 그 검은 경판이 쌓여있는 모습은 바위보에서 바위보다 무거운 무게를 느끼게 해주었다. 수많은 목판을 손으로 직접 한글자 한글자 호국을 바라며 전쟁이 끝나길 기원하며 파내려갔다는 책에서 보고 알고만 있었던 지식에 불과한 것이 어떤 장엄함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장경판전 네 건물 가운데서 가만히 둘러보면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무량수전에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지만, 저 곳에서는 뭐랄까..무량수전은 멈춰진 오래된 시간에 같이 서있는 기부이라면 장경판전은 그 보다는 짧지만 오래된 시간이 내가 살고있는 지금까지 흘러내려옴을 느낄수 있었다. 역사는 단지 과거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것이라는 명제가 느낌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할까? 면면히 흘러오는 시간이 존재함을 깨달을수 있었다.
맨 뒷쪽에 있는 장경판전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5살인 큰 아들이 절에는 왜 부처님이 다 있냐고 물어보아 하던 대답대로 부처님은 돌아가셨지만 착하게 사는 법을 알려주셔서 고마워서 그 모습을 본딴 것을 놓은거라 했다. 그런데 이녀석이 절하고 싶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본인이 종교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릴 때는 종교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려고 하는데 이런 말을 들어서 잠시 당황했으나 내 대답에 훌륭한 분이라는 의미만 가지고 하는 행동일거라 생각되어 말리지 않았다. 저 곳에서는 그럴 기분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이 신발을 벋고 들어갔는데 불상에 절한적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라, 아들놈이 목례를 하길래 같이 그렇게 했다. 축복받은 기분이라는 표현이 한국적인건지 서구적인건지 알 수는 없으나 다른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을 진하게 느끼고 돌아올 수 있었다.
장경판전안에서는 일체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추측컨데 플래쉬의 강한 빛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서 건물의 구성부와 카메라가 닿으며 생기는 손상등을 막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저 사진을 찍고 아쉬움이 남아 잠시 다시 올라갔는데 서쪽 산으로 지는 햇빛을 받으 때 창살에 비치는 햇빛이 팔만대장경을 은은하게 비취는 모습에서 황홀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앞에서 해가 지는 가야산과 함께 보이는 해인사의 풍경은 한국의 정서가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주는 값진 풍광이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다 장성해서 시간이 여유가 생긴다면 하루종일 거닐어 보기를 바라게 되었다.
경남 합천에 있는 해인사에 다녀왔다. 잘 알다시피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이 있는 우리나라 3대 법보사찰중 하나이며 성철 스님의 사리가 있는 곳이다.
아침 10시경에 출발, 휴계소에서 아침 점심을 다 먹으며 중부내륙을 타고 아이들과 함께 가다보니 휴계소마다 정차. 도착하니 3시가 다되었다. 원래는 근처 마이산까지 둘러보고 가고 싶었으나, 당일치기 여행이라 이건 접었다. 다음에 마이산을 갔다가 다시 해인사도 들려봐야겠다. 가는 길에 사진을 찍을수가 없었는데 성주ic를 나온후 해인사까지 이어지는 가야산 기슭의 39번 국도. 이 길 참 대단하더라. 여행을 좋아해서 강원도 내륙도 많이 다녀봤지만, 이런 길을 경남에서 만날줄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경사는 비록 강원도에 비해 약간 완만하나 코너의 회전은 강원도 어느 고갯길과 비교해도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물론 천천히만 가면 아무 문제 없다.
해인사는 가야산 국립공원 안에 있어서 주차장도 가야산 국립공원 안에 있다. 큰 길가주변에 작은 주차장이 있고 해인사 앞에도 작은 주차장이 있으나 왠만하면 큰 길 주변의 주차장을 이용하는게 좋다. 좀 걷자. 그 좋은 산에가서 창문닫고 차로 해인사 앞까지 가는건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여행 초보자다. 보행자 길도 왠만큼 완만하고 닦여있어서 유모차도 끌고 갈 수 있다. 해인사 앞 주차장은 정말 몸이 불편한 분들이나 이용해야되지 않을까 싶다.
청청한 겨울 가야산의 공기를 마시며 걸어가면서 해인사의 옛 사진들을 보았는데,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지금보다 작은 규모이고 정말 산속 깊은 곳 숲이라는 바다의 섬이었다. 지금 해인사의 앞쪽은 현대에 들어 새로 건설한 것이고, 규모는 꽤 큰 편이다. 해인사는 크게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맨 앞쪽 낮은 단은 현대에 들어 새로 지은 건물들이며, 수행하는 스님들의 방도 무척 많았다. 그 곳들은 문풍지가 있는 곳은 모조리 비닐로 덮어놓아서 쉽게 구분을 할 수 있었는데 가장자리로 잘 안보이는 건물은 모두 그런 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 외는 기념품을 파는 곳이나 법종 법고를 매단 건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간 단은 옛 절의 모습이 보이고 대웅전을 비롯하여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절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해인사가 창건될 당시부터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이다.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될 만큼 오래되었고 이 곳이 절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비록 국보나 보물은 아니지만 단정한 아름다움을 수백년간 간직하며 이 곳의 역사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제일 윗단이 우리가 알고 있는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판전이다.
언제나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 팔만대장경은 저 건물안에 검은 목판으로 빼곡히 쌓여있었다. 문살사이로 보이는 그 검은 경판이 쌓여있는 모습은 바위보에서 바위보다 무거운 무게를 느끼게 해주었다. 수많은 목판을 손으로 직접 한글자 한글자 호국을 바라며 전쟁이 끝나길 기원하며 파내려갔다는 책에서 보고 알고만 있었던 지식에 불과한 것이 어떤 장엄함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장경판전 네 건물 가운데서 가만히 둘러보면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무량수전에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지만, 저 곳에서는 뭐랄까..무량수전은 멈춰진 오래된 시간에 같이 서있는 기부이라면 장경판전은 그 보다는 짧지만 오래된 시간이 내가 살고있는 지금까지 흘러내려옴을 느낄수 있었다. 역사는 단지 과거가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것이라는 명제가 느낌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할까? 면면히 흘러오는 시간이 존재함을 깨달을수 있었다.
맨 뒷쪽에 있는 장경판전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5살인 큰 아들이 절에는 왜 부처님이 다 있냐고 물어보아 하던 대답대로 부처님은 돌아가셨지만 착하게 사는 법을 알려주셔서 고마워서 그 모습을 본딴 것을 놓은거라 했다. 그런데 이녀석이 절하고 싶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본인이 종교를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릴 때는 종교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려고 하는데 이런 말을 들어서 잠시 당황했으나 내 대답에 훌륭한 분이라는 의미만 가지고 하는 행동일거라 생각되어 말리지 않았다. 저 곳에서는 그럴 기분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같이 신발을 벋고 들어갔는데 불상에 절한적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라, 아들놈이 목례를 하길래 같이 그렇게 했다. 축복받은 기분이라는 표현이 한국적인건지 서구적인건지 알 수는 없으나 다른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을 진하게 느끼고 돌아올 수 있었다.
장경판전안에서는 일체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추측컨데 플래쉬의 강한 빛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서 건물의 구성부와 카메라가 닿으며 생기는 손상등을 막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저 사진을 찍고 아쉬움이 남아 잠시 다시 올라갔는데 서쪽 산으로 지는 햇빛을 받으 때 창살에 비치는 햇빛이 팔만대장경을 은은하게 비취는 모습에서 황홀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앞에서 해가 지는 가야산과 함께 보이는 해인사의 풍경은 한국의 정서가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주는 값진 풍광이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다 장성해서 시간이 여유가 생긴다면 하루종일 거닐어 보기를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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